성스러운 섬, 스리랑카 이야기

10. 호튼플레인즈 국립공원의 빛과 나무와 하늘(1.16. 토 오전)

노정 2016. 2. 7. 03:09




















오늘 오전의 일정 : The Mist Holiday Bungalow - (승합차) - Horton Plains Nation Park - The Mist Holiday Bungalow – Lipton Seat – (tuk tuk) - Haputale - The Mist Holiday Bunga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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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rton Plains National Park : 해발 2100~2300m의 고원에 자리잡은 평원. 1836년 실론의 영국인 총독 ‘호튼’의 방문 이후 이런 이름이 붙었다. 9km에 달하는 트레킹 코스의 끝에는 ‘세상의 끝(world’s end)’이라는 절벽이 있다. 600만 평의 습지, 360만 평의 아열대 지역에 750종의 식물과 100여 종의 동물이 서식하여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승하도 나도 상태가 썩 좋지는 않다. 둘 모두 감기약을 열심히 챙겨 먹었다. 새벽 5시. 어둠 속에서 숙소를 나갔다.
차는 어둡고 구불구불한 돌길을 고속도로처럼 쌩쌩 달렸다. 목숨을 건 질주다!
하늘이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할 무렵 매표소에 도착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입장료에, 가족 입장료 추가에, 주차료에, 기사 입장료에 무슨 봉사료까지... ‘세계자연유산’을 너무 악용하는 것 같아 모두들 기분이 상했다. 그 사이에 해는 저 쪽 나무숲 뒤로 떴다. 평원 끝에서의 일출을 놓쳤다.

해발 2000미터가 넘는 평원을 차는 다시 달렸다. 동물이 별로 없는 세렝게티 같은, 이른 아침 평원의 느낌이 좋다. 걷고 싶다.

드디어 주차장에 도착했다.
아침 빛과 안개가 어우러져 있다. 그것만으로도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

아침 빛은 거칠다.
밤새 채워 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고 거침없이, 이 구석 저 구석에 날카롭게 스며든다. 우아하게 조절할 줄 모르고 적당히 감출 줄 모른다.
숨막히게 역동적인 아침 빛의 에너지를 나는 아직 세련되게 조련할 줄 모른다. 다만 숨막히게 사랑할 뿐이다.

호튼플레인즈에서 나는 빛과 놀았다. 하늘, 나무의 실루엣, 길... 그들과 사랑에 빠졌다. 내 사진의 대부분이 하늘과 나무라는 것도 그 때 깨달았다.
걷는 일밖에 없었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것들과 걷는 것보다 더 황홀한 것이 있을까?

‘세상의 끝(world’s end)’에 도착했다. 아득한 낭떠러지! 아득한 아래를 보니 다리가 후들거린다. 드디어 여기에 내가 왔구나! 하지만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끝까지 간 것이 아니라 가는 과정의 순간 순간을 즐기며, 집중하며 걸었을 뿐이다. 그 끝이란 곳이 어떻게 생겼는지 조금은 궁금했지만. 내 인생도 그랬으면 좋겠다.

돌아오는 길은 뛰듯이 걸었다. 이응훈샘 일행이 지루하게 기다리고 계실 걸 알기 때문이다. 여행지의 의미가 모두에게 같지는 않을 때도 있다. 내게 너무나 행복했던 그 길이 그분들껜 평범하고 지루했고, 승하에겐 힘들었단다.
일행이 없었더라면 나는 열 배쯤 더 느긋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이곳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분들이 싫어서가 아니다. ‘미안함’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어서일 것이다. 모두가 힘들어하는데 나만 행복했을 때의 미안함은, 나도 모르게 마음의 짐이 되었던 것 같다.

호튼플레인즈에서 돌아오는 길에 립톤시트에 들르자는 계획은 자연히 무산되었다. 모두들 지쳤다. 승하는 질릴 때까지 밀크티를 마시며 쉬고 싶다고 했다. 지쳤을 땐 각자 혼자만의 충전이 필요하다. 우린 다섯 시에 버스 정류장 앞에서 만나기로 하고 잠시 헤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