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섬, 스리랑카 이야기

11. 안개 속의 립톤시트! 그리고 모하멧.. (1. 16. 토 오후)

노정 2016. 2. 7. 03:35


오늘 오후의 일정 : The Mist Holiday Bungalow – Lipton Seat – (tuk tuk) - Haputale - The Mist Holiday Bungalow

숙소에 와 준 툭툭 기사는 ‘모하멧’이었다. 이름만으로도 무슬림임을 알 수 있었다. 여행을 통해 나는 무슬림을 많이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만난 무슬림 남자들은 거짓말을 하지 않고, 성실했으며, 매우 가정적이었다. 물론 술도 마시지 않는다. 이 모든 것들은 그들의 계율 속에 있다.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은 일부일 뿐이지 전부가 아니다.

무슬림에 대한 생각을 말한 덕에 모하멧과 나는 아주 빨리 친해졌다. 그는 아주 밝고 붙임성이 있으며 친절한 스물 두 살의 청년이었다. 한 가지만 빼고는 최고였다.
 
사람들이 지친 것이 나 때문이라는 미안한 마음이 컸었나 보다. 시내에 남은 승하만큼이나 내 마음도 홀가분했다. 립톤시트로 가는 길은 오전의 호튼플레인즈와는 또 다른, 그림같이 아름다운 길이었다. 흐린 하늘조차도 아름답게 느껴질 정도로 온통 푸른 길. 게다가 원색의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들과 원색의 툭툭들이 하늘의 밋밋함까지 채워 주었다. 매표소까지 가는 한 시간 가량의 풍경에서 1초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무슬림의 마을을 지나, 힌두 사원과 맞붙은 듯한 학교를 지났다. 안개가 피어오르는 차밭 사이를 구불구불 돌며 길은 하늘을 향해 나 있었다.

매표소 앞에 툭툭을 세우더니 모하멧은 처음 약속과는 달리 30분 만에 갔다 오란다. 오는 길에 태운 친구가 그의 판단력을 잠시 흐리게 한 것 같다. 하긴 그 나이면 친구가 제일일 때지. 30분이면 충분히 다 본다고 하기에 “오기 전에 한 시간이라고 약속했잖아”라고 했더니 바로 “OK”다. 대신 안개가 많이 껴서 천천히 오르면 꼭대기에서 아무것도 볼 수 없을지도 모르니 일단 지름길로 빨리 올라가란다.

모하멧이 가르쳐 준 “short cut”으로 들어섰다. 차밭 한가운데의 아주 좁은 오솔길. 안개 속의 오솔길은 신비롭고 평화롭고 아늑하기까지 했다. 안개 낀 것이 오히려 행운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꼭대기에 올랐다. 역시 목적지보다는 과정이 나았다. 그리고 유명한 곳은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립톤이 앉아서 여러 생각을 했다는 ‘시트’에는 가지 않았다. 사실 나는 차밭을 보러 온 것이지 침략자의 한 사람인 그에게는 호감이 없다. 그래도 차밭 꼭대기까지 온 기념으로 차를 한 잔 마셔야겠다고 생각하고 꼭대기 매점에서 “Tea”를 주문했다. “차 한 잔”이라고 또박또박 말했다.


한참이나 시간을 끌더니 심부름하는 아이가 차는 주지 않고 쟁반에 음식을 수북이 담아 온다. ‘난’에 ‘사무사’에 소스에... 폴론나루와에서의 그 따뜻한 수북함이 아니란 걸 직감했다. “난 홍차 한 잔만 시켰는데” 했더니 그냥 먹으란다. “공짜라고?” 그랬더니 또 그냥 먹으란다. 옆에 앉아 있던 폴란드 친구들이 나를 보더니 빙그레 웃었다. 한참 있다가 드디어 홍차가 나왔다. 얼마냐고 물었더니 450루피란다. 세상에!! 바로 아래 하푸탈레에서는 50루피인데! 어이가 없다. 폴란드 친구들이 또 웃었다. “혹시 너도 같은 케이스니?” 물었더니 그렇단다. 아까부터 웃은 이유가 있었구나. “너도 당했구나” 하는 것처럼.


오늘은 여기저기서 바가지를 쓰는 날이다. 역시 싱할리인만 거주하는 곳과 영국인, 타밀인이 섞인 곳은 인심이 다르구나. 같은 세계문화유산이라도 인심이 너무 다르다.
애꿎은 모하멧에게 불만을 털어놓았다. “나 스리랑카 사람들 되게 좋아했거든. 그런데 쟤네들 너무 싫어.”
착한 모하멧은 높은 곳이라 물이 부족해서 그러니 이해하라고 말했다.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닌데... 물이 부족한데 난이랑 사무사는 왜 주냐고? 그냥 바가지 씌우기 미안해서인가?


내려오는 길에 모하멧은 엄청나게 과속을 했다. 조금만 천천히 가자고 했더니 “난 열두 살 때부터 툭툭을 몰았는데 단 한 번도 사고를 낸 적이 없어. 내 기술을 믿어. 그리고 길이 나쁜 거야. 난 이런 길 안 좋아해.”라고 한다. 아이구... 너무 긴장을 해서 다리에 쥐가 날 지경이다.
모하멧은 내일 웰라가야까지 자기 툭툭으로 가자고 계속 졸랐다. 버스로 두세 시간 걸리는데 자기는 지름길로 가서 한 시간 반 만에 갈 수 있단다. 가는 길에 폭포와 정글까지 보여주겠단다. 그냥 거절하기 미안해서 친구한테 물어봐야 한다고 했더니 갑자기 얌전히 툭툭을 세우고는 전화번호와 페북 주소를 가르쳐 준다. 내일 아주 싸게 해 줄 테니 같이 가고, 한국에 가면 자기를 다른 친구에게 소개해 달란다. 아주 운전도 잘하고 돈도 싸게 받는다고. 그러더니 더 빨리 달린다. ‘운전 잘하는’ 걸 과시라도 하듯이. 아이고 이녀석아... 사람을 설득하려면 안전하게 가야지!
























약속한 버스 정류장 앞에 내렸더니 땅 위에서 멀미가 난다. 저녁에 꼭 전화하라는 모하멧을 보내고 나니 바로 승하가 보인다. 예쁜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어젯밤 승하가 폰을 수장시킨 걸 위로하기 위해 내가 근사한 곳에서 저녁을 사기로 했다. 차밭이 아름답게 펼쳐진 바로 위 테라스에서, 우리는 아주 우아한 저녁식사를 했다. 혼자만의 여행에서 겪은 서로의 무용담을 이야기하며. 몇 시간 전과는 달리 둘 다 에너지를 완전히 충전해 있었다.

우리는 진지하게 내일 계획을 세웠다. 웰라가야까지 버스로 꼬불꼬불 3시간, 거기서 갈레까지 6-7시간...종일 버스만 타다 둘다 녹초가 되어 버릴지도 모른다. 한참 고민을 한 끝에 승하가 용단을 내렸다. 샘 멀미도 걱정되고 하니까 웰라가야까지는 툭툭을, 그리고 갈레까지는 버스를 타자고.

우리는 숙소 스탭에게 내일 아침 툭툭을 한 대 불러 달라고 부탁했다. “모하멧이 이 가격에 웰라가야까지 가 준다고 했다. 단 모하멧은 절대 안 된다. 너무 폭주족이다. 무섭다.”
전화를 한참 하더니 걱정 말라고, 모하멧 동생인데 얘는 절대 과속을 안 할 거라고 말한다. 결국 ‘기사’만 빼고 모든 것이 모하멧의 주문대로 되었다.
미안하다 모하멧. 넌 정말 착하고 좋은 친구였는데... 하지만 난 아직 조금은 더 살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