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섬, 스리랑카 이야기

12. 하푸탈레-갈레, 고난의 여정. 그리고 고진감래! (1. 17. 일)

노정 2016. 2. 9. 12:36

오늘의 일정 : Haputale, The Mist Holiday Bungalow (tuk tuk) - Welagaya - (Highway? Bus) - Galle, Millennium Rest

 

- 프롤로그? 9시에 툭툭 기사가 오기로 했지만 우리는 새벽 차밭과의 만남을 위해 이른 새벽부터 나갔다. 새벽 차밭은... 환상이었다! -

 

스리랑카 여행 정보는 아주 많이 부족하다. 특히 하푸탈레에서 갈레로 가는 길에 대한 정보는, 유일한 안내책자라 할 수 있는 론리 플래닛에조차 거의 없었다. 출발 전 우리는 하푸탈레에 와서 돌아가는 상황을 보며 마지막 며칠 일정을 결정하기로 했었다. 그런데 하푸탈레에 왔는데도 정보가 너무 없다. 버스터미널(한 평짜리 사무실?)에 갔더니 버스시간표 대신 볼펜으로 적은 장부 같은 것이 있다. 여기서 팃사마하라마까지 대여섯 시간, 그리고 팃사마하라마에서 갈레까지 또 서너 시간이 걸린단다. 거기에서 갈레행 버스가 얼마나 자주 있는지도 알 수 없단다. 여기서 팃사마하라마까지 가는 버스도 자주 있지 않다. 그나마 제일 적당한 것이 1020분 차 정도? 숙소에 와서 물으니 웰리가야까지는 세 시간 정도가 걸린단다. 거기서는 갈레행 버스도 많단다. 그래서 우리는 웰라가야행을 선택했다. 그리고 모하멧의 도움(?)으로 시간과 체력을 벌기 위해 툭툭을 선택했다.

 

절대로 과속을 하지 않는다는툭툭 기사가 왔다. 한나절 이상 무언가를 타야 한다는 비장한 각오로 툭툭에 올랐다. , 이름이 뭐였더라? 이 친구가 요가였나? 또 요가라고 하자.

우리 숙소 스탭이 간곡히 당부를 했는지 원래 성격이 그런지 요가는 모하멧의 십분의 일도 안 되는 속력으로 천천히 툭툭을 몰았다. 가끔은 걸어가는 게 빠르겠다 싶을 정도로. 큰 길을 따라 20-30분쯤 가더니 좁은 비포장도로로 들어섰다. 어제 립톤시트에 갈 때 그 예쁜 길을 승하가 못 본 것이 마음에 걸렸었는데 다행이다 싶었다. 요가는 맞은편에 차가 올 때마다 섰다. 뒤에서 차나 툭툭이 빠른 속도로 달려올 때도 수신호를 하며 조용히 보내주었다. 하루만에 극과 극 체험이다. 이래서 중용이란 말이 생겼나 보다. 아무튼 목숨을 건 질주보다는 훨씬 나았다.

 

가다 보니 숲이 좀더 우거졌다. 이것이 어제 모하멧이 말하던 정글이 아닌가 싶어 웃었다. 아주 작은 폭포도 나왔다. 이걸 가지고 그렇게 워터폴, 워터폴 외친 거야? 귀여운 뻥쟁이 같으니라고!

그런데 한참 가다 보니 꽤 높고 멋진 폭포가 나온다. 우리가 탄성을 질렀더니 요가가 세워 주었다. 우리나라에선 보기 힘든 높이다. 진짜였구나! 뻥쟁이로 몰아 미안하다, 모하멧!

 

거의 두 시간 만에 웰라가야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내리자마자 한 청년이 묻는다. “어디 가?”

갈레에 간다고 했더니 이 차가 막차라면서 빨리 타란다. 이제 겨우 열한 시인데. 아무래도 믿을 수가 없어 대합실을 찾아 갔다. 버스를 대는 곳만 있었지 역시 사람들이 기다릴 수 있는 어떤 은 없었다. 사람들에게 묻고, 승하와 교대로 정류장 곳곳을 탐색한 끝에 알아낸 충격적 사실! 자주 다닌다던 갈레행 버스는 하루에 두 대, 1140분 차가 막차. 팃사마하라마에 가야 자주 있단다.(어제와 반대의 정보!) 여기서 팃사마하라마까지는 또 세 시간. 버스는 130분에 있단다. 아까부터 훈수를 두며 도와주는 듯하던 핑크 셔츠 아저씨는 자기 툭툭을 타고 팃사마하라마까지 가잔다. 마타라까지 네 시간 가는 방법도 있단다. 거기서 갈레까지는 두 시간이면 간다는데 마타라행 버스 역시 초만원이었다. 직원을 찾아 물어봤더니 또 다른 어떤 도시에 가서 툭툭을 타고 8킬로미터를 가면 갈레행 버스가 아주 자주 있단다. 문제는 거기서 바로 가는 버스가 없다는 것.

사면초가다! 현지 사람들조차 스리랑카 교통 정보에 어둡다는 함정이 있었다. 게다가 오늘은 일요일. 타밀축제와 연초의 휴일들이 명절처럼 겹쳐서 어느 버스나 만원이란다. 설상가상이다!

 

결국 우리는 결정을 했다. 1140분에 갈레행 버스가 오면 일단 어느 정도 만원인지 확인하고 웬만하면 탈 것. 정 안 되겠으면 130분까지 기다려 팃사라마하라마까지 갈 것.

이럴 줄 어제 알았으면 하푸탈레에서 팃사라마하라마행 1020분 버스를 탔겠지.

이쯤 되니 둘 다 멘붕 상태. 주위에 사람들이 잔뜩 모여 이래라 저래라 훈수를 두는 통에 우리는 초연한 자세로 가방을 열어 빵을 꺼냈다. 일단 먹어 두자! 그 다음에 생각하자.

조금 있으니 제복인 듯한 옷을 입은 누군가가 달려와 갈레행 버스가 정류장 앞쪽에 왔단다. (이 나라는 버스가 제자리에 서는 적이 없다.) 짐들을 번쩍 들고 뛰었다. 다행이 버스 안은 하푸탈레행 기차보다는 숨 쉴 구멍이 많다. 오케이!

 

짐을 놓고, 비장한 자세로 멀미캔디를 입에 넣었다. 설마 일곱 시간을 서서 가는 것은 아니겠지? 제발 둘도 말고 자리가 하나만 생겨라. 둘이서 30분씩 앉아 가게!

나의 소박하고 간절한 소원이 하늘에 닿은 것일까? 30분쯤 가니 자리가 딱 하나 났다. 우리는 30분씩 앉아 가기로 했다. 내가 상대방보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앉으면 어쩌나 서로 걱정하고 챙기면서.

행복했다. 30분씩 앉아 갈 수 있다는 것이. 그리고 서 있을 때도 내 카메라 가방을 맡길 사람이 있다는 것이. 붐비는 사람들 사이로 조금씩 불어오는 바람이 쾌적하기까지 하다. 선 채로 고개를 숙여야 볼 수 있는 차창 밖 경치도 아름답다. 행복은 이렇게 상대적이구나. 여행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

 

마타라쯤에선가? 어느 해안 도시에서 마침내 자리가 하나 더 났다.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즉시 갈레 숙소를 예약했다. 아름다운 인도양이 차창 가득 들어온다. 정말 에메랄드 빛이네!

 

고행이 아닌 여행을 시작한 지 한 시간쯤 지났을까? 드디어 갈레에 도착했다! 맨먼저 사람들에게 Railway Station부터 물었다. 모레 콜롬보행 좌석표 예약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콜롬보행 열차는 예약이 되지 않는단다. 우린 또 입석 인생이구나!

배낭을 앞뒤로 메고 나오니 툭툭 기사가 다가온다. 숙소까지 300루피? 터무니없다. 100루피 아니면 안 가겠다고 했더니 그쪽도 돌아선다. 1.3킬로미터밖에 안 되는데 갈레 물가는 많이 비싼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데 툭툭 기사가 우리를 쫓아왔다. “20루피만 더 줘.” 못이기는 척 승낙했다. 이 더위에 걸어갈 마음은 사실 없었다.

Millennium Rest에 짐을 풀었다. 드디어 그 험한 여정이 끝났다! 바로 밖으로 나갔다. 세상에, 바닷가까지 2분 거리네! , 고생 끝에 낙이 오는구나!

 

갈레는 지금까지 본 스리랑카와 많이 다르다. 유럽의 작은 도시 같다.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뀐 슬픈 역사 위에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갈레는 평화롭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리고 일상을 즐기는 사람들과 관광객으로 조용히 붐비고 있었다. 우리도 조용히 그 속에 동화되기 시작했다.

갈레 포트가 어두워진다. 여행의 막바지, 이제 우리는 느리고 게으른 여행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