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섬, 스리랑카 이야기

8. 페데라니아 왕립식물원, 그리고 캔디호수에서의 선셋 (1. 14. 목)

노정 2016. 2. 7. 02:58


오늘의 일정 : Lake Bungalow – (bus) - Clock Tower - (bus) - Preadenia Gardens - (bus) - Kandy 시내 - Kandy Lake - Lake Bungalow
Botan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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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자동차가 빵빵대는 호숫가를 보기 위해 새벽잠을 설칠 필요는 없었다. 오늘 아침은 적당히 잤다. 이제는 아주 자연스러워진 마을버스를 타고, 시장 앞에서 내리고, 시계탑까지 걸어가 페라데니아행 버스를 탔다. 교통체증도 매연도 여전히 심하지만 이제 익숙해졌다. 하루만에 우린 캔디 시민이 된 듯 자연스러워졌다.
9시 좀 넘어서 페라데니아 식물원 앞에 도착했다. 결혼식을 막 마친 듯한 아름다운 신부와 화동들이 나오고 있었다. 신부도 아름다웠지만 초록 정원과 아주 강렬하게 잘 어울릴 듯한 화동들의 붉은 드레스가 더 예뻤다.


* 캔디 : Kandy 왕조(1590-1815)의 수도.
1505년 포르투갈의 침략으로 시타와카 왕조가 멸망했으나 1590년 잔존 싱할라 왕족이 수도를 캔디로 옮기고 부흥을 꾀한다. 그러나 1640년 네델란드, 1790년 영국의 침략을 받는다. 특히 영국과의 캔디 전쟁(1796-1818)에서 패전한다. 전쟁 종결 3년 전에 왕정이 폐지되고, 영국은 플랜테이션 농업(차, 고무, 향신료)을 위해 남인도로부터 많은 타밀인을 이주시킨다. 1948년에 독립했으나 캔디는 여전히 영국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한다.
페라데니아 왕립 식물원(Preadenia Botanic Gardens)은 싱할라 왕조의 정원.


식물원은 대책 없이 넓었다. 싱할라 왕조의 정원이라고 하지만 동양적이라기보다는 영국적인 것 같다. 특별한 것은 없었다. 책이나 TV에서 특별하게 느껴지던 ‘세계 최대의 벤자민 나무(나무의 그늘만도 500평에 이른다)’조차 그리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


그저 우리는 열심히 사진찍기 놀이에 빠졌다. 이렇게 돌아다니다가 김샘들을 만나겠지 했는데 정말로 어느 모퉁이에서 갑자기 두 분을 만났다. 여행을 하다 보면 그렇다. 만날 사람은 만나게 된다! 우연인지 의도인지도 분명치 않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냥 만났다는 것 자체로 신나고 들떴다. 우리는 그늘을 찾아 앉으려다 곤충을 피해 잔디밭 한복판에 진을 치고 앉아 시내 곳곳에서 사들인 간식들을 전리품처럼 내놓았다. 그리고 드디어 어제부터 준비한 회심의 ‘삶은 계란’을 내놓았다. 오늘 아침 숙소에서 삶아 달라고 부탁하고 소금도 얻어 왔으니 이만하면 완벽한 준비지! 그런데 달걀을 깨는 순간 아뿔싸! 이건 숫제 날달걀이다. 아까 스탭이 “반숙? 완숙?” 했을 때 “반숙”이라고 말한 내 죄가 크다. 한 바탕 자지러지게 웃었다. 아무도 그 날달걀을 먹을 용기를 내지 못했다. 역시 다른 나라에서 “덜 익혀 주세요”는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
또 다시 만날 것을 확신하면서 우리는 또 헤어졌다. 이젠 헤어짐까지도 즐겁다.


한참 후 캔디행 버스를 탔다. 환전을 하고, 빵집에서 천천히 홍차를 한 잔 마셨다. 땀흘리며 걷다가 잠시 앉아 마시는 향긋하고 달콤한 홍차 한 잔의 여유! 커피와 맥주 외에 좋아하는 음료가 생겼다. 빵이 기가 막히게 맛있었는데 빵집 이름을 알아오지 못했다.


여기저기 시내를 돌아다니다가 리어카에서 파는 콩 한 봉지를 샀다. 콩과 채소를 섞어서 요리한 것인데, 유독 캔디 사람들이 많이 들고 다니는 이게 어제부터 참 궁금했었다. “매운 맛? 순한 맛?”을 묻던 아저씨는 우리가 망설이자 아예 두 컵을 다 주셨다. 에고.. 그거 한 컵 팔아서 얼마 버신다고 이렇게 다 주시다니,... 미안했지만 정말 고맙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콩 때문에 신이 난 우리는 다시 힘을 내어 캔디 호수로 향했다. 세계문화유산인 불치사(Temple of the Tooth, Dalada Maligawa)는 호숫가에서 창살 너머로 보았다. 저녁 빛을 받아 상아색으로 빛나는 불치사는 고귀하고 아름다웠지만 사실은 승하도 나도 불치사보다 캔디호수의 선셋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대는 200%... 넘치게 채워졌다. 우리를 떠난 듯했던 행운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날 밤의 일기>
타밀 축제 뒤라 그런지 옆에 호텔? 클럽?이 있어서 그런지 사람들이 밤새 음악을 틀고 춤출 기세다. 그런데 그리 싫지 않다. 다른 일을 하다가도 다리가 까딱거리고... 무한 긍정? 어느새 그들과 함께 즐기고 있다.
캔디에서의 일정이 끝나고 있다.
혼잡함, 매연, 호수, 시계탑.... 캔디에서 가장 기억될 것들.
그리고 아주 맛있고 값싼(30루피였나? : 1루피는 8.5원 정도) 빵과 콩 장수 아저씨의 넉넉한 인심...
그리고, 미리 기차표를 예약하지 못하고 온 무능함(?)에 대한 멘붕... “all booked!!”
이 모든 것들을 뒤로 하고 내일 아침 일찍 하푸탈레행 기차 입석과의 전쟁을 치러야 한다. 제발 운이 좋기를!!
사진들을 보니 이번 여행이 얼마나 멋진지, 행복한지 알겠다. 남은 기간도 감사와 행복으로 가득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