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섬, 스리랑카 이야기

5. 시기리야! 시기리야! (Sigiriya, 세계9대불가사의)(1.12. 화 오전)

노정 2016. 1. 30. 15:04

오늘 오전의 일정 :Green Ayurvedic Resort - (by Tuk Tuk) - Sigiriya Rock

 

새소리와 함께 눈을 떴다. 제일먼저 승하의 발목부터 확인했다. 괜찮단다. 다행이다!

그리고 밖으로 달려나갔다. 눈부신 초록, 보인다던 시기리야록은 전혀 보이지 않지만, 잔디 사이로 정답게 늘어져 있는 초가집들... 그리고 아누라다푸라 숙소에 이어, 찾을 땐 제 자리에 없지만 만나면 너무나 정다운 스탭들...^^(이 친구들은 승하에게 반해 어젯밤 시끌벅적한 파티를 벌였었다.) 성냥 하나도 그냥 줄 수 없어 잠시 후에 꼭 돌려달라고 하는, 웃기고 귀여운 시스템. 나는 발이 삔 승하를 대신해 이것저것 빌리기 위해 어젯밤도 오늘아침도 계속 뛰어다녔다. 3구멍 시스템의 처음 보는 콘센트도 나의 분주한 움직임에 한 몫을 했다. 젤 위쪽 구멍에 플러그를 집어넣어야 아래쪽 두 구멍이 열리는데, 이걸 잘못 작동하면 전기가 나가 버린다. 이런 신기한 콘센트 때문에 스리랑카 숙소에서의 일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두꺼비집’ 전기 올리기!!

친절하고 해맑은 스탭들과 숲속의 방갈로를 뒤로 하고 시기리야록으로 향했다. 처음 스리랑카에 끌린 것이 이 시기리야록과 차밭 때문이었지만 여행이 다가올수록 두려웠다. 소문이 나도 너무 난 잔치... 실망할 것 같아서였다.

 

주차장에 내렸을 땐 그 불안감이 딱 맞아 떨어진 것 같았지만, 해자를 건너고 입구에 들어선 순간 그 짐작은 빗나갔다.

 

* 시기리야 록. 해발 370미터의 땅에 200미터 높이로 솟은, 일명 Lion's Rock.

“다투세나 왕에게는 평민 부인과 왕족 부인이 있었는데 평민 부인의 아들 카사파는 동생인 목갈리나 왕자가 세자에 책봉되는 것이 두려워 아버지를 죽인 후 왕위에 오르고, 동생까지 죽이려 했다. 동생이 도망치자 그의 복수가 두려워 이 엄청난 요새를 지어 숨었다. 불안감으로 인한 정신병에 시달리다 결국 14년 후 동생 목갈리나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신화가 아니라 실화. 너무나 인간적인, 마치 세익스피어의 비극같은 이야기를 품은 그곳은 놀랍게도 너무나 넓고 잔잔하고 평화로웠다. 마치 땅이 열려 그 모든 갈등과 피를 모두 삼킨 후에 굳게 입을 닫아 버린 것처럼. 더 놀라운 건 쉴새없이 들어오는 관광인파 속에서도 여전히 이 굳은 평화가 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가 않았다. 이래서 불가사의인가?

맨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시기리야록이 아니라 투명한 연못과 그 위에서 쉬고 있는 두루미들, 큰 나무와 거기에 열매처럼 달려있는 원숭이들이었다. 그리고, 타지마할이나 알함브라궁전을 연상케 하는 긴 정원...

드디어 바위를 향한 계단이 시작되었다. 엄청나게 가파르고 힘들다는 후기에 마음을 단단히 먹고 출발했으나, 어제의 피두란갈라에 비하면 평평하고 넓은 도로 같았다. 별 기대를 하지는 않았었지만, 18명의 압살라들이 그려져 있다는 벽화는 철창 속에서 철저히 보호되어 있었다. 아무 감동도 없었다. 어떤 것을 꼭 봐야겠다는 목표를 정하지 않은 것은 참 다행이다!

 

다시 바위를 오르고 올라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아~~!

이럴 줄 몰랐다. 내가 상상했던 ‘좁은 은신처’가 아니라 공중 도시 마추피추였다. 마추피추를 먼저 보지 않았다면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늘에 맞닿은 도시는 몇백 미터 아래의 세상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었다. 사람의 세상보다는 천상의 세상과 훨씬 가까워 보이는 이곳에서조차 카사파는 불안감을 느꼈을까? 사람에게 가장 크고 무서운 적은 ‘센 상대방’이 아니라 양심의 가책에서 오는 두려움인가 보다. 복수당할 일이 없는 내겐어디에 눈을 두어야 할지 모를 아름다운 세상이었는데...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그림에서나 썼던 ‘하늘색’ 하늘, 몽글몽글 흰색 구름... 저 어이없는 유치한 색상들이 현실이라니, 그저 멍해졌다. 그리고 그 공중 도시 위에서 우리는 각자 얼마나 헤매었는지, 얼마나 취했는지, 스스로도 알지 못한다.

 

큰 나무 그늘이 보였다. 커피를 마시면서 싫증날 때까지 앉아 있고 싶었다. 그런데 저만치 나뭇그늘에 등 돌리고 앉아 있는 두 사람의 실루엣이 아름다웠다.

“찰칵!” 소리에 두 사람이 고개를 돌렸다.

세상에! 난 이런 우연이 난무한 작품은 안 좋아하는데! 놀랍게도 이응훈샘과 이봉진샘이었다! 여기서는 도대체 모든 것들이 비현실적이다.

한참 동안 ‘이산가족 상봉’ 의식을 치르고, 우리는 다음 여행지 어디에선가 또 만날 거라는 예감 아닌 확신을 하면서 즐겁게 헤어졌다.

 

늘 그렇지만, 열심히 준비해도 여행에서는 예상의 30%가 들어맞을까 말까이다. 예상을 빗나가는 반전,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돌아가는 어떤 힘에 이끌려 내 몸과 마음이 돌아가는 것, 이것이 내가 여행에 빠진 이유일까? 좋아하는 데 이유 따위는 없지만. 어쨌든 사람은 가끔 잘 돌아가던 쳇바퀴에서 일탈하고 싶은 본능을 가진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아마, 나처럼 지나치게 그 쳇바퀴에 충실한 사람이면 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