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섬, 스리랑카 이야기

6. 두 번째 왕국, 폴론나루, 그리고 쿠마라! (Polonnaruwa, 세계문화유산)(1.12. 화 오후)

노정 2016. 1. 31. 16:31

오늘 오후의 일정 : Sigiriya Rock 입구- (Local Bus) - Polonnaruwa : (by ‘쿠마라’의 툭툭) Lildiya Family Resort - 로컬식당 - 쿼드랭글(Quadrangle)-왕궁터-Rankot Vihara - Lanka Tilaka 사원 - Gal Vihara - Lildiya Family Resort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길을 살짝 잃었다.(시기리야록은 올라가는 쪽과 내려오는 쪽이 다르다) 아까 들어갈 때 요가(툭툭 기사^^)가 왼쪽으로 가지 말고 오른쪽으로 나와야 한다고 했었는데 그게 그 뜻이었구나. 친절한 사람들의 도움으로 잘 빠져나왔다.

우리가 폴론나루와행 버스 타는 쪽에 세워 달라고 했더니 요가는 버스가 잘 안 다닌단다. 분명 숙소 스탭은 시기리야록 오른쪽에서 버스를 타는 것이 담불라까지 가서 타는 것보다 시간 비용 모두 절약된다고, 버스도 자주 다닌다고 말했었다. 요가 말의 핵심은 폴론나루와까지 자기 툭툭으로 가자는 거였다. 이럴 때 나는 참 단호하다. “버스 자주 안와도 좋으니 세워!” 역시 세계적인 관광지 인심은 시골 인심과 다르구나. 새삼 어제의 르완이 그립고 고마웠다.

우리는 그늘을 찾아 버스 타는 쪽 반대편에서 편안히 기다렸다. 오랜 기간 영국 식민지였던 스리랑카는 차가 가는 방향이 우리와 반대인데... 머리로는 아는데 몸이 자꾸 제 고집대로 한다. 사람 습관이 참 무섭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길을 건넜다. 마침 버스가 한 대 정차해서 물어봤더니 폴론나루와행이란다. 역시 우리는 운이 좋다! 이번에도 모든 시선이 우리에게 집중되었다. 그리고 또 누군가가, 저쪽에 두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아줌마한테 얘기해서 그 옆에 앉으라고 신호를 보낸다. 따뜻한 사람들, 그리고 따뜻한 햇볕...^^ 그러나 먼지 바람이 살랑살랑 들어와서 덥지 않다. 구불한 길, 큰 나무와 들, 길가에서 무언가를 파는 사람들,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덜컹거리는 버스 안이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다. 폴론나루와에 내려 달라고 이번에도 부탁했지만 그 전에 사람들이 먼저 얘기해 주겠지? 그냥 마음껏 즐기자!

 

미리 먹은 멀미약 덕분인지 아름다운 경치 덕분인지 몇 시간의 버스타기는 소풍처럼 즐겁게 끝났다.

‘번화한 시골’ 같아 보이는 삭막한 길 위에서 우리는 내렸다. 빨리 이 길을 벗어나 숙소로 가고 싶었다. 툭툭기사들이 말을 걸어왔다. “어디서 왔어?” "Korea"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들려오는 유창한 한국어. 한국에서 몇 년 일했단다. 갑자기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태도를 알기 때문이다. 마치 잘못을 저지르고 상대방이 알아차릴까 조마조마해하는 것처럼 눈치가 보였다. 내 나라가 자랑스럽지 않다는 것도 속상했다. 다행히 그는, 겉으로 보기에는 한국에 대한 나쁜 감정이 없어 보였다. 쿠마라라고 했다. 숙소로 오는 길에 이것저것 많은 얘기를 했다. 되도록 천천히, 듣기평가처럼 말하려고 노력하면서.

 

쿠마라는 우리에게 유적지 입장료 3500루피(1인당)만 받고 유적지 전체를 보여주겠다고 제의했다. 원래 계획은 폴론나루와에서는 자전거를 타는 것이었지만, 도로 상황을 보니 자전거를 탈 만큼 한적한 곳이 아니다. 혹시나 다른 상술이 숨어있나 의심하는 내게 그는 “공짜예요. 한국에서 왔으니까, 더 안 받고 구경시켜주고 싶어요.”라고 했다. 눈을 보니 사기꾼 같지는 않았다. 거절할 이유가 없지! 승하에게 물어보니 우선 로컬식당에 가서 밥을 먹고 싶단다. 그럼 밥 먹는 일정도 추가하면 되지.

카메라와 데이팩만 급히 챙겨 쿠마라의 툭툭을 탔다. 동네 사람들이 가는 식당에서 밥을 먹고 싶다고 했더니 아까 그 주차장 마을 식당에 데려다 주었다. 음식은 싸고 맛있었다. 역시 길거리 식당이 최고다! 망설임 없이 접시를 싹싹 비우는 우리는 모든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었다. 서로를 구경하고, 인사하고, ... 그러는 일들이 일상이 되어가고 있다.

 

잠시 나갔던 쿠마라가 돌아왔다. 출발, 폴론나루와!

*폴론나루와는 아누라다푸라가 함락된 이후 210(1017-1236여년간 지속된 싱할리 왕조의 두 번째 왕국이다. 비자야 바후 1세가 타밀세력을 남인도로 쫓아냈고, 파라크라마 바후 왕 때 전성기를 누렸다. 아누라다푸라와 마찬가지로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당연히 도시 입장료가 있다. (2인분 식비는 300루피가인데 2인분 입장료는 7000루피이다.)

메인로드를 벗어나니 드디어 한적한 시골풍경이 나타났다. 폴론나루와에 대한 실망스런 첫인상이 좀 누그러졌다.

공터같은 곳에 장이 열려 있었다. 보고 싶다고 했더니 쿠마라가 세워 주었다. 우리나라 5일장 같은 왁자지껄한 장. 말라비틀어진 과일도, 비릿한 생선도, 흥정하는 사람들도, 신기한 눈으로 우리를 구경하는 사람들도, 모두 정다웠다. 너무 복잡해서 카메라를 못 꺼낸 것이 아쉽다. 그렇게 모두 치열하게 물건을 사고 팔고 있는데 카메라를 꺼내기도 사실 미안했다.

우리는 사람 사는 모습을 실컷 보고, 과일도 잔뜩 샀다. 아, 부자가 됐다!

 

드디어 유적지 입구! 음... 앙코르왓 앞과 흡사하다. 중국인 관광객도 많다. 물건을 강매하려는 사람들도 많다. 게다가 하늘은 급격히 흐려졌다. 맛있는 스리랑카 음식과 시장 구경으로 생겨났던 에너지들이 쑥쑥 가라앉기 시작했다.

여행지에 대한 나의 인상이나 기분은 그날의 하늘과 아주 깊은 관계가 있는 것 같다. 그 다음에는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표정? 단체관광객의 양(‘수’라기보다는 대형차들이 토해놓는 양...) 스리랑카 유적지 골든트라이앵글 중 마지막 코스이자 가장 기대했던 폴론나루와 유적지는 의외로 가장 ‘심심했다’, 내게는.....

‘갈 비하라’를 보기 전까지는. (그 전의 유적지들에 대한 이야기는 사진으로만!)

 

우리 기분을 아는 듯 차를 한 잔 마시자고 제의한 쿠마라는 해가 지기 조금 전을 기다려 우리에게 갈 비하라에 다녀오라고 했다.

연못을 지나 아주 커다랗고 완만한 바위. 그리고 맞은 편 바위에 새겨진 부처님의 좌성과 입상(*이건 부처님 상이 아니라는 설이 있지만)과 와상.

해지기 전의 빛과 바람, 평화로운 부처님의 표정은 잠시 지친 마음을 씻어주었다. 건너편 바위 위에서 에닐곱 분의 스님이 앉아 합장을 하고 있었다. 나도 바위에 앉았다. 땅거미가 내려오도록. 드디어 찾아온 평화와 행복... 여행자의 온도는 이렇게 늘 오르락내리락이다. 반전과 오르막, 내리막... 이 또한 감사하다.

 

어두워진 폴론나루와, 쿠마라는 호숫가를 달려 우리를 데려다 주었다. 그리고 사장님께 우리에 대한 특별 부탁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미안하고 고마운 사람이다. 그가 오늘 입장료만 받은 것에 대해서, 손해는 없었을 거라고 짐작한다. 그러나 더 많은 이득을 그는 기꺼이 포기해 주었다. 한국인인 내가, 그런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연락처라도 받아 둘 걸. 한국에 오면 밥 한 끼 사 주고 싶은데, 그냥 보내다니... 이 마음 그대로 그를 기억해야지. ‘쿠마라’는 ‘왕자’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