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섬, 스리랑카 이야기

4. 루완과 툭툭이 만들어 준 10시간의 꿈(1. 11. 월)

노정 2016. 1. 30. 04:48

오늘의 일정 : 아누라다푸라 ->->->->->->

 

시기리야(그린 아유르베딕 리조트) 아침 일찍부터 버스정류장으로 달려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 목적지로 가는 버스를 찾고 버스 시간을 묻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얼마나 여유롭고 은혜로운 일인지, 배낭여행자들은 알 것이다. 오늘은 그런 날이다. 하지만 우리는 새벽잠을 포기했다. 아무도 손대지 않은 새벽 공기, 조금씩 밝아오는 길과 아직 마르지 않은 이슬, 아이 보는 아버지, 학교에 가는 아이, 때마침 들어오는 기차, 풀숲 가운데의 소, 연둣빛 아침 빛... 들과의 만남과 작별을 위해.

 

약속했던 일곱 시. 식탁에 앉았다. 레스토랑엔 대체 무언가를 만들고 있는 흔적조차 없다. 한참 앉아 있으니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어느 외국인의 후기가  생각났다. “스탭들은 친절하지만 있어야 할 자리에 있지 않다!” 하지만 화가 나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처음부터 짐작했을 것이니까. ‘되바라짐’보다 훨씬 정이 가는, ‘따뜻하지만 게으름’을. 시간을 지킨 사람은 루완뿐이었다. 미안하다고 양해를 구하고, 우린 약속시간보다 30분 늦은 8시 30분에 출발했다.

 

길가의 나무와 풀을 빠뜨리지 않고 볼 수 있는 속도, 기분좋게 온몸을 스치는 바람과 먼지, 엔진의 기름냄새 속에서도 확연하게 느껴지는 풀냄새,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 하나하나,... 가공되지 않은 이 모든 것들을 만날 수 있는 툭툭을 나는 사랑한다. 어쩌면 툭툭은 교통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여행이다.

 

첫 번째 도착한 곳이 어디였더라? 부처님에게서 시작해 동서남북 어딘가로 출발하는 듯한 스님들(statue)들이 있는 곳... 이 스님들은 탁발을 하러 가는 것일까? 아니면 중생들을 제도하러 가는 것일까? 루완은 ‘몽크’라고만 말해 주었다.

 

다음에 도착한 곳은 리지다푸라 템플. 도투게무누가 타밀의 겔라르와 전투를 시작한 곳이란다. 이 전투에서 이긴 후에 루완엘리세야 대탑을 세웠겠지? 루완이 그렇다고 한다. 다고바 앞 작은 연못 위에 비정상적으로 큼직한 연꽃이 조각되어 있다. 사람 하나는 족히 들어감직한 저 연꽃 속에 도투게누무는 침략자를 몰아내겠다는 소망을 새겨 넣었을까? 내가 스리랑카의 역사와 불교에 관심이 있다는 걸 눈치챈 루완은 아쇼카왕의 딸 상가미타가 보드가야에서 성스러운 보리수를 가져오는 모습을 담은 벽화까지 보여 주었다. 리지다푸라 템플 여행은 마치 어제의 여행을 보충하는 듯했다. 인적도 시간도 멈춘 사원 속에선 역사 속의 사람들이 ‘옆사람’으로 다가온다. 건물 지붕을 용트림하며 감싸는 흰 나뭇가지들을, 다고바 위에 비치는 아침 빛을, 아쉽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았다. 

 

툭툭은 시골길을 달렸다. 이쯤 되면 메마를 법한 감탄과 감동은 화수분처럼 매순간 새로 솟았다. 여행초보 승하도, 여행베테랑인 나도, 이것만은 똑같았다. 눈치 빠른 루완은 호숫가에서, 시골길 모퉁이에서, 우리가 말하지 않아도 섰다. 철길 위를 지나갈 때나 원색의 전통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저만치 걸어갈 때는 우리가 셔터를 누를 수 있도록 잠깐 멈춰 주었다. 루완, 넌 정말 성공하겠구나! 일은 저렇게 해야 하는 거구나! 나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 루완에게 존경심이 생겨났다.

 

루완은 자그마한 바위산 아래에 우리를 세워 주었다. 아우카나 사원이란다. 유럽 사람인 듯한 스님이 어디서 왔느냐고 묻는다. (알고 보니 러시아 스님, 드미트리.)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이 절에 한국인 스님이 계신단다. 세상에! 잠시 후 노스님 한 분이 잰 걸음으로 나오신다.

“아니,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 앉아. 차 한 잔 마시고 가.”

대혜스님이라고 하셨다. 국가니 민족이니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한국인 관광객이 거의 없는 스리랑카에서 한국인 스님을 만난 것은 감동이었다. 대혜스님은 차 한 잔과 함께 스님의 전생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셨다. 전생에 작은 사미스님이셨단다. 선배들과 공부를 하던... 아마 이 절에 오시게 된 인연을 말씀해 주시고자 하셨나 보다. 그리고는 아우커나 불상 앞으로 우리를 안내하시고, 불상 앞에서 함부로 엉덩이를 보이는 우리를 너그러이 지켜봐 주셨다. (스님들은 부처님을 등지면 안 된단다.) 드미트리스님이 따라다니면서 우리 사진을 찍어 주었다. 대혜스님이 그토록 반갑게 같은 나라 사람을 만나는 것이 그도 기뻤나 보다. 스님은 우리를 더 잡아 두려 하셨지만 동행이 있다는 걸 말씀드리자 주지스님만 만나고 가라고 하셨다. 뭔가 선택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또 다른 건물에서 주지스님을 만났다. 어린이같은 표정을 가진, 그리고 사진 찍기를 아주 좋아하시는, 폰 만지기와 셀피에도 꽤 익숙하신, 신도가 아닌 우리 눈에는 그저 정겹고 귀여운 분이셨다. 주지실에서 우리는 웃고 떠들며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물론 가장 적극적인 분은 주지스님이셨다. 헤어지기 전 대혜스님은 내 손금을 보셨다. “스님 저 좋은 남자 만날 수 있나요?” 했더니 “지금 하고 있는 교사 직에서 큰 탑을 세울 거야.” 하셨다. 이런...

 

스리랑카는 연일 우리에게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 준다. 인연인지 여행지에서의 추억일 뿐인지 알 수 없지만 따뜻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다. 며칠째 계속되는 행운에 승하는 불안해 하기도 했다. 다음엔 힘든 일들이 기다리고 있으려나? 하지만 그 때는 그 때 나름의 방법이 있겠지. 일단 이 행운을 즐기자!

 

또 다시 작은 시골길을 달렸다. 나무 위에 지은 집들(코끼리의 습격에 대비하기 위한 집이란다)이 드문드문 있는 정글을 지나 웨이티겔라 유적지에 도착했다. 그리고 주춧돌만 남은 유적지와 숲을 여행했다. 인적이 드문 곳인데도 청소를 하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었다. 한 나라의 수준은 국민소득으로 따지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루완은 코끼리를 보여준다고 했다. 여행초보 승하를 위해 그러자고 했지만 막상 우리가 도착한 곳은 ‘코끼리를 타고 정글으르 한 바퀴 도는’ 곳이었다. 예전엔 멋모르고 코끼리를 탄 적이 있지만, 지금은 그것이 동물학대라는 생각을 한다. 승하도 내 생각에 동의해 주었다. 르완에게 “우리는 야생코끼리를 보고 싶었지, 코끼리를 타고 싶지는 않다”고 정중히 거절하고 비두랑갈라로 향했다.

 

드디어 세계 9대 불가사의라는 시기리야록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기리야록을 조망할 수 있다는 비두랑갈라에 도착했다. 비가 왔는지 길이 질척거렸고, 하늘은 먹구름으로 가득했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많이 험했다. 승하는 중간에 더 오르기를 포기했다. 강요하지 않았다. 위로 올라갈수록 길은, 험한 바위산을 좋아하는 내게도 벅찼다. 마지막 몇 개의 바위는 다리를 최대한 올려도 닿지 않았다.  ‘안전’과 ‘더 가 보고 싶다는 의지’ 사이에서 몇 번이나 망설였지만, 그 때마다 몸을 최대한 바위에 밀착시켜 기어 올랐다. 2300미터의 아찔한 산꼭대기 바로 아래에서 무엇이 나를 움직였을까? 극기심이니 성취욕이니 정복욕이니 하는 것들은 조금도 없다. 다만, 올라가 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곳의 공기를 느껴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은 나의 고생을 보상해 주었다! 안개에 둘러싸인 시기리야록이 눈높이에서 보였고, 비현실적인 푸른 하늘과 비늘 구름, 그리고 선인장들이 감추어져 있었다. 사람조차도 그림이 되었다.

승하에게 전화를 했다. “승하야, 강요하고 싶지는 않은데, 정말 위험하고 힘든데,.... 그런데 여기 너무 좋다. 선택은 네가 해.”

정말이지 강요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다만 이 멋진 곳을 혼자만 보는 것은 미안함을 넘어서 죄라는 생각이 들었다.

승하는... 왔다! 찌푸린 얼굴로. 발을 절고 있었다.

 

마지막 목적지, 시기리야록에서 불과 1.8킬로미터라던 숙소는 시기리야를 벗어나도 없었다. 묻고 묻고 헤매고 돌고... 를 거친 끝에 드디어 정말로 green한 그린 아유르베딕 리조트를 찾았다. 이로써 루완과의 환상적인 하루가 끝났다. 루완과 사진이라도 찍어 뒀어야 했는데... 루완엘리세야 대탑을 잊지 않는 한 그를 잊지 못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