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섬, 스리랑카 이야기

1. 길고도 복잡했던, 천일 같았던 첫 날(2016. 1. 9. 토)

노정 2016. 1. 28. 21:50

(1) 비행기까지, 그 멀고 험한 여정 2016. 01.09

새벽 다섯 시. 누베게스트하우스에서 눈을 떴다. 밤새 뒤척이는 승하와 ‘에이스’가 아닌 침대 덕분에 거의 잠을 못 잔 상태에서. 그래도 조금 일찍 내려가 준비해 준 승하 덕분에 차에 타면서 아침식사를 할 수 있었다. 백패커의 바람직한 자세! 싫지 않은 싸늘한 새벽 공기,물기어린 잿빛 하늘, 부지런한 불빛... 드디어, 설렘!

6시 공항 도착. 우선 짐부터 정리하고, 커피 한 잔 하면서 느긋하게 좀 쉬려고 했다. 그런데 비자를 프린트한 게 아니라 비자발급확인서를 프린트한 게 문제가 되었다. 문구를 끝까지 읽지 않고 초보인 승하에게 100% 맡겨 버린 것이 내가 잘못한 점이다. 프린트를 할 곳을 찾아 헤매었지만, 보딩타임에 맞춰 문을 여는 곳이 없다.. 게다가 승하에게 자동출입국심사 장소를 정확히 알려주지 않은 또 하나의 실수! 승하의 긴 줄은 줄어들지 않았다. 여행 신고식인가?

초보처럼 몇 시간을 허겁지겁한 끝에 겨우 비행기를 탔다. ‘액땜이겠지?’ 라는 위로만 마음속으로 반복하면서... 두 시간 전에 도착해도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공항에서 좀 여유롭게 쉬고 싶어 세 시간 전에 출발한 것이 다행이었다. 여행 자주 다닌다고 방심하는 것은 절대 안 된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여행과 운전은 경력이 전부가 아니다. 겸손하자!

 

비행기에 타면 바로 녹아떨어질 줄 알았다. 그런데 희한하게 잠이 오지 않는다. 초보인 승하가 들떠서 안 잘 줄 알았는데, 반대의 현상이 일어났다. 이래서 사람 일, 참 모른다.

졸업앨범 만드느라 며칠 진을 빼는 바람에 스리랑카 역사를 꼼꼼하게 읽지 못했는데, 다행이다. 뜻대로 되는 일도 있구나, 감사하게도. 스리랑카의 역사를 알아야 아누라다푸라-폴론나루와-시기리야 유적지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열심히 공책에 시대별로 정리했다. 이것이 북부 지역 여행에 정말로 큰 도움이 되었다.

여행을 오래 해 오면서 늘 드는 한 가지 의문. 잘 조직되고 계획된 여행이 좋은 것일까, 대충 준비하고 가서 선입견 없이 눈과 감정에 맡기는 여행이 좋은 것일까? 답은 아직 모르겠다. 어쩌면 답은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적지를 여행할 때는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그래야 내가 보는 것들이 의미있게 보인다.

 

(2) 상해, 푸동공항, 기약없는 기다림이 준 것

상해, 푸동공항에 내렸다. 환승게이트를 지날 때부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공항이 아니라 무슨 수용소나 취조실 같은 느낌. 마치 시대극 속의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긴 수속, 어둡고 외진 구석들을 거쳐 물류창고처럼 썰렁하고 넓은 환승게이트에 도착했다. 이륙시간보다 한 시간 가까이 이른 보딩타임..... 과는 전혀 상관없이, 이륙예정시간 한 시간이 넘도록 안내방송 한 번 나오지 않았다. 불안, 초조, 또 불안...

콜롬보 포트 역에서 10시 30분에 출발하는 아누라다푸라행 우편 열차를 탈 수 있을까? 이 기차를 타지 못하면 오늘밤을 콜롬보 어디에서 보내야 하나? 포트 역은 페타 시장 지역에 있고, 그 인근엔 숙소가 없다. ... 고민 끝에 우리는 새벽 5시 30분 기차를 탈 때까지 역에서 노숙할 것을 결정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찔할 정도로 위험한 결정이었다. 포트 역에는 노숙할 만한 공간이 없다. 뻥 뚫린 공간에서 여자 둘이 노숙을 하다니... 얼마나 위험천만한 결정이었던가!)

그 때 등 뒤에서 한국어가 들렸고, ‘아누라다푸라’라는 말이 들렸다. 귀를 기울여 보니 그분들도 아누라다푸라에 갈 예정인 듯하다. 저분들과 함께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승하와 상의한 후 바로 그분들에게 함께 10시 30분 기차를 탈 것을 제의했다. 그리고 우린 한 팀이 되었다.

동방항공(Eastern China)!

비행기는 두 시간이 훨씬 넘게 딜레이되었다. 심지어 탑승게이트까지 바뀌었다. 탑승 후에도 한참 동안 줄을 서서... 밀린 비행기들의 이륙을 지켜봐야 했다. 참 특별한 경험이다. 싼 게 비지떡이란 사실을 진작 주시했어야 했다는 후회와, 야간열차를 탈 수 없겠다는 초조함, 엄청난 과속(?)을 하지 않으면 10시반까지 포트 역에 도착하는 일은 불가능하리라는 체념, 그리고 이 와중에도 동행할 든든한 일행이 생겼다는 안도감, 그러면서도 기적이 일어나 제 때에 역에 도착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감...

속에서 이륙을 했다. 이런 기막힌 상황 속에서 드디어 잠이 오기 시작했다.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라고 성경에도 나와 있지.

 

(3) 착륙!

9시! 푸동에서 만난 세 분 중 한 분인 목사님에 의하면, 고속도로를 타면 택시로 40분 정도 걸린단다. 잘하면 기차를 탈 수도 있다는, 아슬아슬한 희망이 생겼다. 난생처음으로 비행기가 완전히 멎을 때까지 안전띠를 풀지 말고 앉아 있으라는 방송을 무시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앞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비행기가 멈추자마자 뛰듯이 걸었다.

Bandaranayike 국제공항은 의외로 평화로웠다. 비행기에서 내린 사람들이 우리밖에 없는지, 입국수속장에 붐비는 인파도 없었다. 직원은 친절했다. “아유보완”이라는 내 인사에, 직원은 환하게 웃어 주었다. 입국수속은 간단했다. 비행기 안에서의 막연한 바람 대로, 모든 것이 순조롭게, 빠르게 진행되었다. 이제 짐을 찾는 일과 환전하는 일, 유심을 사는 일이 남았는데... 짐 찾기는 승하에게 맡기고 우선 내가 먼저 나가기로 했다. 그리고 승하가 짐을 찾는 동안 환전을 하고, 유심을 구입했다. 심을 교체하는 작업이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9시 45분, 짐을 찾은 일행이 나왔다. 아슬아슬!! 그러나 그분들의 환전, 승하의 유심 구입 등이 남아 있다! 목사님이 역으로 가는 택시를 알아보는 과정에서, 아누라다푸라까지 택시로 가는 것이 어떠냐는 제의를 받았다. 아누라다푸라까지는 다섯 시간이 걸린단다. 역까지 제시간에 도착할 수 없다면 노숙을 하기로 했었지만, 노숙보다는 이게 나을 것 같다. 일행 분들과의 회의 끝에 우리는 기차 대신 택시를 선택하기로 결정했다.

혹시나 나중에 기사기 딴 소리를 할 것에 대비해 몇 번이나 호텔 이름과 위치를 이야기하고, 드디어 택시에 올랐다.

그리고 드디어 여행이 시각되었다!!

한밤중의 스리랑카 도로는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상상했던 것처럼 꼬불꼬불하지도 않았다. 여행에 대한 설렘이 이제야 시작되는 것인지, 잠도 오지 않았다. 택시기사의 운전은 다이내믹했다. 길거리는 깨끗하지만 사람들의 운전 스타일은 인도식이다. 심장이 쿵쾅 뛰었다.

 

(4) Levis Tourist Homsstay, Anuradhapura!

새벽 두 시 반! ‘리비스’가 아니라 ‘리바이스’ 투어리스트 홈스테이에 도착했다. 들판 한가운데, 풀숲 사이에 굳게 걸어잠긴 대문이 있었다. 두드려도 두드려도 대답이 없더니 한참만에야 졸린 듯한 표정으로 한 남자가 나왔다. 그리고 한참의 흥정 끝에 드디어 우리는 방을 구했다. 눅눅하고 냄새나는 방이지만, 드디어 등 붙이고 누울 보금자리가 생겼다!!

Safe!!

처음으로 편한 잠을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