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스러운 섬, 스리랑카 이야기

2. 1. 10(일) 오전 - 아누라다푸라

노정 2016. 1. 28. 22:14

 

<오늘의 일정>

Lievis Tourist Homestay Anuradhapura - Isurumuniya Vihara(Rock Temple) - Sri Maha Bodhi - Tissa Wewa - Ruvanvelisaya Dagoba - Thuparama Dagoba - Lievis Tourist Homestay Anuradhapura(by bicycle) - Old Bus Station(by Tuk Tuk) - Mihantale(by Local Bus) - Kaludiya Pokuna(Black Pond) - Maha Vihara(by Tuk Tuk) - Lievis Tourist Homestay Anuradhapura(by Tuk Tuk)

 

드디어 시작된 여행의 첫 아침!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아이러니하게도 ‘오늘 저녁엔 짐싸지 않아도 되니 다행이다.’

그리고, 예약할 때 보았던 멋진 정원에서의 첫 식사는 모기떼의 사정없는 공격과 함께 시작되었다. 여행은... 깨어나기 두려운 아름다운 꿈이자, 꿈에서 만난 또 다른 현실이다.

 

오늘의 계획은 자전거를 타고 유적지 둘러보기. 이응훈샘과 이봉진샘(나중에 알게 된 이름들이지만)은 우리 여행에 함께 하시기로 했다.

자전거를 타고 길을 나섰다. 아이들이 가득한 사원 같은 곳에 잠시 들렀는데 이름은 ‘캔디 비하라’라고 한다. 수업을 하는 아이들도 있고 의자를 나르는 아이들도 있었다. 푸흔 나무와 흰옷이 잘 어울렸다. 사람의 손을 조금도 거치지 않은 듯이.

 

다시 길을 나서 자전거를 달렸다. 차가 많이 다니는 길을 지나 조금씩 한적해지는 길, 그리고 연못... 하늘과 바람과 햇볕을 온몸으로 느꼈다.

모자와 신발을 벗고 이수루무니야 정사에 들어섰다. 포쿠나에서 손 대신 마음을 씻고, 발바닥으로 모래의 따뜻함을 느끼며 천천히 걸었다. 열반에 드신 부처님을 만나고, 열반을 상징하는 ‘어긋난 발가락’을, 지문을 따라 빙글빙글 쳐다보았다. 그리고 사원 꼭대기를 향해 오르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리고 성스러운 보리수 앞에 잠시 짐을 풀고 앉았다.

 

파아란 하늘, 사람들의 미소, 경외심 가득한 맨발의 걸음걸이, 살랑이는 바람, 아이들의 소리, 아까도 만났었다는 정다운 눈인사...

아... 이것이 극락일까?

아니, 어디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편견도 경계심도 없이 부처님 미소를 짓고 맞아주는 사람들을 만났다는 것, 그리고 거리낌 없이 이 모든 것들 안에 내가 녹아들어 있다는 것이다.

이봉진샘은 보리수 아래서 시를 쓰고 있고, 승하는 깃털보다 더 가볍게 들떠서 사람들을 만나고 찍고 있다.

 

* 이수루무니야 : BC3C, 이 땅에 최초로 불교를 받아들인 데바 남피야 팃사Deva Nampiya Tissa가 세운, 최초의 절. ‘아누라다푸라 북쪽에 있는 절’이라는 의미.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팃사웨와로 옮겼다. 데바 남피야 팃사가 세운 인공 저수지. 인공저수지라는 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컸다. 어떤 사람들은 그 주위를 걷고, 어떤 사람들은 낚시를 하고 있었다. 반짝이는 물, 붉은 흙, 커다란 나무, 나무보다 훨씬 작은 점점의 사람들, 이 모든 것들을 감싸는 하늘과 구름...

 

다시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어디를 가느냐보다 중요한 건 이 아름다운 길을 달리고 있다는 것. 행선지가 굳이 정해져 있지 않아도 좋았다. 티켓오피스?를 거쳐, 약간의 실랑이 끝에 티켓을 구입하고, 도투게누무 대왕이 타밀족으로부터 아누라다푸라를 탈환한 기념으로 세운 어마어마한 탑, 루완엘리세야에 도착했다. 조성 당시 높이 103m, 지름 290m로 세계최대였으나 수차례에 걸친 타밀의 침공으로 지금은 높이 55m의 모습으로 남아 있단다. 탑을 둘러싼 담장에 새겨진 코끼리의 숫자만도 셀 수 없을 정도로 어마하게 큰 탑. 그러나 입구부터 붐볐고, 해는 탑 꼭대기 위에서 뜨겁게 내리쬐고, 평화도 바람도 사라졌고, 우리는 지쳤다. 비싼 돈을 굳이 주고 이 탑을 보진 않겠다고 먼저 돌아선 이봉진샘의 선택이 옳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탑을 보지 못하고 갔더라면 아쉬움과 후회가 남았을 것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가끔은... 알면서도 의무방어전처럼 치러야 하는 것들이 있다. 처음부터 그리 내키지 않았던 르완엘리세야 대탑과의 만남은, 아누라다푸라 방문자로서의 의무방어전으로 남았다. 여행이 끝난 지금 후회는 없다.

 

해가 수직으로 머리 위에 군림해 있을 때는 정면으로 맞서지 않는 것이 좋다.

지쳐버린 우리는 자전거를 투파라마 다고바 앞에 세우고 쉬었다. 그리고, 아누라다푸라 일정은 이 정도로 하고 미힌탈레에 다녀오기로 했다. 일단 숙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