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나라, 행복해지는 나라 부탄

행복한 나라, 행복해지는 나라 부탄14 - 탁상라캉(호랑이 둥지)

노정 2015. 7. 7. 20:01

탁상라캉 (2015. 6. 17. 수)

 

부탄의 새벽은 안개로 시작된다.

환상적인 안개가 히말라야를 품고, 파로 종을 휘감고, 눈처럼 마을을 뒤덮고 있다. 믿을 수 없는 정경이다. 창문을 열고 정신없이 그 광경을 담았다. 배고픈 것도, 아직 세수를 하지 않았다는 것도 모두 잊었다.

 

드디어 탁상라캉으로 출발했다. 부탄 사람들이 부처님 다음으로 섬긴다는-내가 보기엔 부처님 이상인 듯했지만- 파드마삼바바가 세운, 범인이 함부로 근접하기 어려운 곳에 우뚝 선 ‘호랑이 둥지’.

 

탁상라캉 트레킹은 내게 아주 특별했다. 해발 3,400미터에 위치한 신비한 사원인 탁상라캉은 부탄 여행에서 가장 기대되는 코스이기도 했지만 가장 두려운 코스이기도 했다. 고산병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유독 3000미터 대에서 나는 두 번의 고산병을 경험했다. 차마고도에서의 고산병과, 꾸스꼬에서의 아주 지독한 고산병... 해발 4000미터가 넘는 우유니나 사추캠프에서도 무사히 넘겼던 것을 나는 희한하게도 3000미터 대에서 극복하지 못했다. 얼마나 지독한 고산병이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몸서리가 쳐진다. 그 후로 나는 3000미터 대에 대한 두려움이 생겨 버렸다. 겨우 두 번의 고산병에 이런 편견이 생겨버리다니,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판단인지를 알지만, 두려움은 때로 이성적인 판단을 덮어버린다.

소크라테스는 지식에 세 단계가 있다고 말했다.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도 모르는 단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은 단계, 그리고 진짜로 알게 되는 단계...

두려움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아예 실체 파악을 못해서 두려움 자체가 없는, 철없고 겁없는 단계, 상대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가를 알고 두려움이 생긴 단계, 그 두려움을 극복하는 단계...

 

‘두려움의 2단계’였던 나는 탁상라캉까지 걸어가느냐, 말을 타고 중간까지 가느냐 선택의 기로에서 후자를 선택했다. 걷기와 등산을 아주 좋아하지만 고산에서의 등산은 평소의 등산과 전혀 같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그 좋아하는 맥주도 전날엔 마시지 않고 몸을 ‘정하게’ 했다. 말을 타고 중간 전망대까지 갔고, 거기에서 점심을 먹은 다음에도 최대한 체력을 비축하면서 아주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아기 다루듯, 유리그릇 다루듯 조심조심 내 몸을 다루면서……. 그리고 다행히 아무 탈 없이, 남들보다 많이 늦게 탁상라캉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런치브레이크 직전이라 이미 내려가기 시작한 사람들을 뒤로 하고, 꼴찌인 나를 기다려 주신 대연스님 덕분에 탁상라캉 안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를 수 있었다.

관광객이 다 내려간 사원의 고적함과 평화로움, 자연과 신앙심의 기막힌 조화와 공존 앞에서 숨이 막힐 듯 가슴이 떨렸다. 사바세계와 동떨어진 엄청난 높이 위에서 진행되고 있는, 절 사람들의 조용하고 평범한 일상은 또 하나의 잔잔한 감동이었다. 발걸음보다 심장이 빨리 뛰었다. 하지만 절과 절 사람들에게 그새 동화되었는지 경망스런 설렘보다는 깊고 잔잔한 감동과 감사에 가까운 심장 떨림이었다. 사진을 찍지 못했지만 이곳에서 본 것과 느낀 것들은 어떤 사진보다 강하게 가슴에 각인되었다.

 

고산병에 대한 두려움을 나는 아직 극복하지 못했다. 그러나 3000미터 대에서 내가 약하다는 편견은, 아주 조금 극복한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이것이 또 다시 무모한 자신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자연의 섭리 앞에서 인간은 겸손해야 한다. ‘뛰어 봐야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는 말처럼 내가 날뛰어 봐야 자연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여행을 통해 늘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