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일기

34년차 국어교사의 코로나 상황 적응 이야기

노정 2020. 7. 13. 11:31

- 제가 활동하고 있는 국어교과모임에서 글쓰기 릴레이가 있어서, 코로나 기간에 고민하고 분투했던 것들을 글로 적었습니다. -

 

창밖에서 빗소리와 서늘한 공기가 들어와 글 쓰고 싶게 하는 날씨네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김**샘께서 글쓰기를 제의하셨을 때부터, 코로나 발생 기간 동안의 이야기를 정리해 보고 싶었어요.

저는... 수업이 잘되면 아주 행복해지고 수업이 잘되지 않으면 아주 불행해지는 무척 단순한 34년차 교사입니다. 그러다 보니 하루하루의 가장 중요한 목표도 늘 좋은 수업이었습니다. 30여년간의 고민과 시행착오를 통해 나름대로의 원칙과 노하우도 생겼고, 내 수업에 대한 자부심도 강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해 모든 것이 달라졌습니다. 등교를 할 수 없게 되었고, 모둠활동을 할 수 없게 되었고, 늘 해오던 학생활동중심수업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흐려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강의 위주가 아니라 학생이 스스로 활동할 수 있는 수업을 어떻게 해서든 해야 한다는 고민이 늘 어깨를 눌렀습니다.

 

3월 첫 몇 주는 이런 혼란 속에서 보내다가, 아이들의 배움이 더 이상 유예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습니다. 학급별 카톡방에서 이런 고민들을 아이들에게 이야기했고, 아이들도 , 우리 공부해요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모든 학생이 이렇게 얘길 한 것은 아니었지만요.

우선 2월에 계획했던 수업 계획을 잠시 접어 두고, 1과부터 시작했습니다. 마침 문학과 삶이라는 단원이라 이 기회에 아이들에게 문학 작품을 좀 읽히자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노새 두 마리부터 작품을 읽히고, 활동 과제를 매일 냈습니다. 카페를 통해 과제를 제시하고, 반별 국어카톡방에 이것을 링크하고, 아이들이 좀 생각해 보게 한 다음에 이 과제들을 네이버폼으로 만들어 다시 카페에 올리고 이를 반톡방에 다시 링크했습니다.

그리고 작품에 대한 질문을 종일 받았습니다. 때로는 새벽까지.

아이들은 질문을 통해 성장해갔습니다. 물론 전원이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참여율도 90% 가까이 되었습니다. 그 땐 국어만 과제가 나가는 상황이라 많은 아이들이 이 과제를 재미있어했고, 질문을 통해 앎이 확장되어가는 과정을 뿌듯해했습니다.

온라인개학이 시작되자 아이들이 바빠졌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 동안 했던 작품들에 대해, 카페 채팅을 통해 질문하고 토의하는 방법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카페 채팅방이 열리지 않아 도교육청에 전화해 열어 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참 친절하게 도와주셨습니다. 생각보다 아이들의 반응이 너무 좋았습니다. 카페 채팅방엔 100명만 들어올 수 있다는 단점이 있어서, 채팅 후에는 채팅 내용을 모두 저장해서 카페에 올려 주었습니다.

문학 단원이 끝나고, 토론, 논증, 문법 단원 중 그나마 온라인수업으로 제일 가능한 것이 논증 단원이라고 생각해 4과를 앞으로 당겼습니다. 평소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교과서 회사 사이트에도 들어가고, e학습터에도 들어가서 아이들이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자료들을 열심히 모으고, 재구성했습니다. 그리고 소단원 하나가 끝났을 때 등교 개학을 했습니다.

 

의욕이 없어진 아이들과의 첫 대면 수업은 힘들었습니다. 모둠활동은 불가능했고, 마스크를 낀 채 강의를 하는 선생님 시간에 아이들은 대부분 자버렸습니다. 몇 달 동안 고민했던, 인터넷을 활용해 모둠활동을 하는 방법을 시도했고, 2주 가량의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재미 없어 보이는 아이들의 표정과 뜻대로 따라 주지 않는 컴퓨터, 핸드폰이 저를 지치게 했습니다. 교실에선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미안해. 샘이 아직 이 프로그램 다루는 것이 서툴지? 조금 더 노력해서 다음 시간엔 좀더 재미있게 해 줄게. 오늘은 좀 봐줘.”
일단은 모둠별 단톡방을 만들었고, 교실 컴퓨터를 통해 다섯 모둠의 활동 상황을 파악하고 피드백함으로써 모둠활동은 자리가 잡혔습니다. 모둠별 발표는, 처음엔 정**선생님과 백**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잼보드를 사용해서 했는데, 되는 날보다 안 되는 날이 많았습니다. 방과후에 매일 남아서 교실 피씨에 뭔가를 깔았다가 지웠다가를 반복했고, 미러링이 잘 안 되는 반의 TV을 이리저리 만지고 연결하고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다가, 정**샘이 패들렛을 소개해 주셔서 사용했는데, 다행히도 이건 말썽 없이 잘 되었습니다. 문법 단원에서는 카훗 사용법을 다시 익혀서 복습 문제로 제시했는데, 평소에 공부 하기 싫어하던 아이들도 너무나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했습니다. 지금은 통일을 향한 국어의 길수업을 하고 있는데, 남북한 언어 차이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을 돋우기 위해 사랑의 불시착을 열심히 다시 보고, 자료를 만들었습니다. 오늘은 남북한 언어 실태와 차이 극복 방안에 대한 글쓰기를 했는데, 모둠톡방에서 아이들이 지난 시간에 수집한 자료를 선정하고 개요를 짜는 과정을 보면서 아이들의 놀라운 성장에 아주 많이 감동을 했습니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고, 아직도 이 상황이 언제 끝날지 예측을 할 수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교사로서의 자존감이 떨어지기도 했고, 개학이 두렵기도 했고, 수업 들어가기가 겁나고 싫기도 했습니다. 다음 단원이 영원히 시작되지 않기를 바란 적도 있었고, 그냥 하루 병가 낼까를 고민한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고민한 만큼 조금은 해결을 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코로나 이전의 수업으로 돌아가기엔 너무나 갈 길이 멀지만요. 그래도, 아이들도 저도 이겨내면서 살아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