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1반 수업을 하다가, 이상하게 이야기가 산으로 가버렸다.
그런 일이 잘 없는데 이상하게 어제는 그랬다. 시는 음악이라는 얘기를 하다가, 처음에 출발했던 곳과는 전혀 상관없이 대학교 때 음악에 미쳤던 이야기까지 가버렸다.
그러다가 모둠활동 할 시간을 잃어버렸다. 헐, 이걸 어쩌나.
내친 김에 여러 가지 이야기, 지금 소설 수업을 하면서 너희들이 얼마나 잘 자라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까지 아주 맘먹고 했다.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데 아이들 몇 명이 옆에 따라오면서 "샘, 너무 재미있어요" 한다.
"내일도 또 얘기하면서 놀까?" 했더니 큰 소리로 "예!" 한다.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니, 얘들아?
하지만 잔뜩 흥분한 얼굴로 목소리픞 높이는 아이들이 참 예뻐 보였다. 미안하기도 했다.
오늘 수업을 들어갔더니 아이들이 "샘, 오늘 너무 예뻐요. 옷이 샘이랑 잘 어울려요."하고 합창을 한다.
세상에... 여섯 반 중에 제일 반응 없었던 아이들이 단체로 이런 표현을 하다니...
다른 아이가 국어일기를 읽을 때도 까르르 웃는다.
그렇구나.
수업을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에겐 숨 쉴 틈이 필요했구나.
허술하게 딴 데로 새기도 하고, 오늘 해야 할 학습목표를 놓치기도 하고
그러는 건 수업을 놓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마음을 잡는 것이구나.
어느덧 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수업 전문가가 되었다.
아이들은 내 수업 한 시간 한 시간이, '샘들이 1년에 한두 번씩 하는 공개수업' 같단다.
하지만 가끔, 아니 자주 이게 과연 최선인가 하는 회의를 한다.
그 회의에서 구하는 것이 이것이었나 보다.
가끔은 빈틈을 보이는 수업
가끔은 쉬어가는 수업...
아이들에게도 숨쉴 공간이 필요한 것이다.
완벽한 준비만큼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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