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수업

시를 한 번 해석해 볼까요? -첫 수업- 이성부, <봄>

노정 2016. 3. 17. 22:07

시를 한 번 해석해 볼까요?

학생들은 -제가 만난 많은 학생들은- 모르는 시를 처음 보면 해설부터 보고, 중요한 데 줄 긋고, 그리고 그것을 암기한다고 대부분 답했습니다.

저도 교사 초기에는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학생들보다 훨씬 많은 자료를 읽고, 그것을 잘 정리해서, 잘 가르치려고 노력했지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생들이 시를 해석하게 하는 수업을 할 수는 없을까?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소논문도 썼고, 강의를 위한 원고도 썼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그냥 간단히 한 시간의 수업을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지금부터 수업 이야기입니다>

 

봄방학 때 교과서 내용을 문학 교육과정-성취기준과 비교하여 분석표를 만들었습니다. 이 표에 의하면 이성부의 <봄>은 첫 단원에 나와 있죠? 하지만 첫 시간부터 아이들에게 시를 해석하자고 하면 너무 힘들어할 것 같아서, 일단 대단원 1의 소설부터 먼저 시작했습니다. 예열을 한 것이지요. 그리고 아이들이 소설 모둠수업에 재미를 들일 즈음-이번 주-에 슬쩍 시를 하나 집어넣어 보았습니다. 모둠활동을 처음부터 너무 어렵게, 생소하게 가져가면 아이들은 모둠 수업에 대한 거부감부터 가질 것이니까요.

 

저는 수업 첫머리에 아이들이 지난 수업에 대해 쓴 국어일기를 읽게 합니다. 돌아가면서 한 명씩 국어일기를 쓰는데, 요즘은 국어일기 내용이 너무 재미있어서 수업이 긷려질 정도입니다. 국어일기 이야기는 다음에 자세히 쓰겠습니다.

국어일기 읽기'로 수업이 재미있게 시작될 무렵 아이들에게 말했습니다.

"이번 시간엔 시를 한 번 해 볼까?"

"선생님, 그것도 모둠 수업이에요?"

"당연하지. 이번 시간엔 시를 한 번 해석해 볼까?"

아이들의 인상이 일그러지기 시작합니다. 마치 '우리가 시를 어떻게 해석해요?' 하는 것 같습니다.

"자, 샘만 믿고 따라와 봐. 시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뭘까?"

아이들의 질문은 가기 다릅니다. 시적화자요, 상황 정서 태도요, 제목요....심지어 "의인법 이런 거요"까지...

"맞아요. 다 중요하지만, 일단 제목부터 한 번 시작해 볼까? 자, 제목이 뭐예요?"

"봄요."

"그렇지? 그럼 봄이 가진 속성부터 생각해 보자. '봄' 하면 뭐가 떠오르지?"

아래의 칠판 사진을 보면 아시겠지만 별의 별 대답들이 다 나옵니다. 저는 아이들의 대답을 받아 적습니다. 아이들의 말을 한 번 더 반복하고 누늘 맞추어 주면서. 가장 신나게 대답한 저희반 칠판인데, 마인드맵이 사방으로 쭉쭉 뻗어 있죠?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시인도 우리랑 똑같은 사람이거든. 그럼 봄에 대한 생각도 너희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거야. 이 중에서 한두 개, 서너 개쯤은 이성부 시인이 말하는 봄과 같은 의미일 거라는 얘기지. 대단하지 않아? 여러분 생각이 시인 생각이랑 똑같아요." "자, 그럼 이 시는 우리가 생각한 봄 중 어느 것을 떠올리며 쓴 시인지, 시를 한 번 읽어볼까?"

여전히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 아이도 있고, 크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 아이도 있지만, 몇몇 아이는 "아, 샘, 신기해요.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라고 말하기도 하고, 칠판에 쓰인 자신들의 생각이 맞았다며 기뻐하기도 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봄'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한 줄 한 줄 정확히, 참고서처럼 해석하려고 하지 말고, 방금 우리가 했던 생각을 중심으로, 전체적인 의미를 먼저 생각해 보세요. 잘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떠오르는 대로. 편하게."

마침 이 날은, 전날이 화이트데이여서 제 제자가 학생들 주라고 추파춥스를 세 박스나 보낸 날이었습니다. 칠판 사진 아래 동영상에 보면 아이들이 입에 뭘 하나씩 다 물고 있죠? 저는 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 가끔 먹을것을 주는데, 그 자리에서 먹어도 좋다고 말합니다. 아이들에겐 이것이 또 다른 자유이고, 일탈인가 봅니다. 굉장히 즐거워합니다. 물론 생각도 더 자유로워지겠죠?

 

전체적인 의미를 대강 먼저 이야기하게 해서, 이 시가 어떤 시이다, 얼개를 짜게 합니다. 처음부터 한 구 한 구에 집착하게 되면 전체를 놓치는 경우가 많죠.

그런 다음에 한 행씩도 좋고 여러 행씩도 좋고 자유롭게 잘라서 세부적으로 해석을 해 보라고 합니다.

 

 

 

이건 다른 반의 동영상입니다. 세상에, 이 모둠 아이들은 '봄'을 '제비'라고 해석했습니다. 신이 나서 제비에 대해 한참 얘기를 하며 흥분을 하더니 그 '제비'를 기가 막히게 '봄'과 연결시켰습니다. 참 예쁘죠? 틀에 박히지 않은, 자유롭고 순수한 영혼들입니다. 그래서 아이들과의 수업은 즐겁습니다. 국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이도 이 모둠에 있었는데, 이 수업으로 국어수업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국어시간에도 완전 신이 나 있었고요.

 

그 다음은 모둠별 발표입니다.

다섯 모둠의 해석.

그 다음은 제가 설명을 할 차례인데, 딱히 덧붙일 말이 없었습니다. 제가 할 말을 아이들이 다 해버렸거든요. 이것이 1차시입니다.

 

2차시 이야기는 내일쯤... 저는 얼른 우리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태양의 후예"를 보러 가야 합니다. 이거 안 보면 아이들과 대화 못하거든요^^ 재미있기도 하고...^^ 아이들이 쓴 해석은 학교에, 제 클리어파일 속에 있네요. 내일 학교 가서 생각나면 첨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