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나라, 행복해지는 나라 부탄

행복한 나라, 행복해지는 나라 부탄9 치미라캉이 있는 솝소카 마을

노정 2015. 7. 6. 22:45

9. 치미라캉(Chimi Lhakhang)을 향하여

뚝바쿤리 스님에 대한 빠니의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자료집엔 ‘드럭바’라고 나와 있었지만 ‘뚝바’라고 하는 게 맞다고 락바가 정정해 주었다. 엉뚱하지만 갑자기 티벳 국수 뚝바 생각이 났다. ^^

뚝바쿤리 스님은 부탄에서 기이한 행적으로 비난을 받기도 하고 널리 포교하여 커다란 존경을 받기도 하는 스님이란다. 우리나라의 원효대사 생각이 났다. 자신의 성기에 ‘까따’를 걸어 다산과 행운을 빌어 주었다는 일화 때문인지 이 스님이 세운 치미라캉에는 유난히 여인들이 많이 찾아온단다. 다산을 기원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만들어낸 주술적 이야기일 수도 있고, 신을 신성불가침 지역이 아니라 사람 가운데에 함께하게 하고자 하는 뚝바쿤리 스님의 의도일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예전에 <연희단 거리패>라는 극단에서 <바보각시>라는 연극을 공연한 적이 있다. 처녀성을 짓밟힌 한 여인이 힘없고 살기 힘든 사람들에게 ‘살보시’를 하고 결국 한 생명을 잉태한다는 이야기다. 정절을 여자의 목숨보다 귀하게 여기던 적이 있었던 우리나라에선 파격적인 연극이었다. 작가 겸 연출가 이윤택씨와 연희단 거리패를 아끼는 나로서는 여론의 질타를 받으면 어쩌나 적잖이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연극은 이 극단의 대표 레퍼토리 중 하나가 되었고, 20년이 넘도록 재공연되고 있다. 집단이 만들어낸 도덕이나 이념보다 사람이 먼저라는 생각을, 연극을 본 사람들도 했던 것일까? 뚝바쿤리 스님의 마음도 그런 게 아니었을까? 생명은 소우주다. 사람이 먼저다.

 

10. 도원의 결의? 드럭비어의 장난?

차는 도출라 고개에서부터 꼬불꼬불한 길을 타고 끝없이 빙글빙글 내려왔다. 드디어 사진에서 보았던 계단식 논이 나타났다. 그러더니 차는 믿을 수 없도록 아름다운 시골 마을(솝소카 마을) 앞에 멈추었다.

다행이다!

라고 생각한 이유는, 여기에 꼭 섰으면 좋겠는데 여기에 섰기 때문이다.

식당에서 보는 경치가 아주 아름답다는 빠니의 장담은 과장이 아니었다. 하늘과 산과 마을과 논, 꾸불꾸불한 논길과 하늘을 향한 희고 고운 ‘라다’들이 통유리 너머로 그림같이 펼쳐져 있었다. 바라만 보아도 배가 부를 것 같았지만 보기만 하기엔 음식이 너무 맛있었다. 그리고, 그놈의 ‘드럭비어’가 문제였다.

나이 차이가 아주 많지는 않은, 그럭저럭 비슷한 세 여자는 이 비현실적인 경치와 드럭비어에 정신줄을 놓아 버렸다. 도원의 결의(?)를 했고, 기분 좋게 기념품 가게로 향했다. 아이들 기념품을 꼭 사야만 했던 내가 문제였다. 벽화와 유리창이 너무 예쁜 가게도 문제였다. 우리는 신나게 기념품을 사고, 사진도 찍었다. 그리고 남들보다 한참 늦게 치미라캉으로 향했다. 우리네 옛 시골길과 너무나 닮은 정다운 논길을 행복한 마음으로 천천히 걸었다. 마을 구석구석을 탐사하다 길도 살짝 잃었다. 그런데 아뿔싸! 저 쪽 길에서 치미라캉에 갔던 사람들이 돌아오고 있었다. 툭하면 사진 찍다 제일 늦었던 내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대로 돌아섰다. 이번엔 내가 가장 선두그룹에서 차로 돌아오는 모범생이 되어 있었다.

나중에 치미라캉 사진을 봤다. 슬프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작고 소박하고 한적한 정경이다! 도원의 결의와 기념품을 이것과 바꾸었구나. 하지만, 여행길에서 나는 포기가 빠르다. 선택이란 둘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포기하는 것이니까.

“하나님은 한 쪽 문을 닫으실 때 반드시 다른 쪽 창을 열어 주신다.” 이건 부탄에 다시 오라는 하나님의 뜻이야!